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퐁파두르 부인 (문단 편집) == 인간관계 ==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퐁파두르 부인은 항상 루이 15세에게 순종적인 자세를 유지했지만, 그렇다고 아예 화를 안내지는 않았는데 루이 15세에게 딱 2번 분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. 2번 다 왕의 공식 정부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 때문이었는데, 그중 하나는 친척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려 13살짜리 어린애였다고 한다. 이 13살짜리 여자아이는 어린애라곤 하지만 왕의 총애를 노리고 [[루이 15세]]를 유혹했고, 결국 성공했을 뿐 아니라 퐁파두르 부인을 쫓아내겠다는 왕의 각서까지 얻어냈다. 문제는 이 성공에 기뻐한 그 소녀가 그 각서를 친척에게 자랑했는데, 그 친척이 하필이면 퐁파두르 파였다. 결국 그 각서는 퐁파두르 부인의 손에 들어갔고, 그녀는 그날 저녁에 찾아온 루이 15세의 면전에 이 각서를 보여주며 격분했다. 루이 15세는 그 길로 그 소녀를 궁중에서 추방했고, 그 소녀를 부추겼던 반 퐁파두르 부인 일파도 얼마 뒤에 쫓겨났다. 그리고 퐁파두르 부인에게는 사과의 뜻으로 작위를 한 단계 높여서 여공작으로 만들어주었다.[* 그 전에는 여후작이었다.] 이후 퐁파두르는 자신에게 그 각서를 보여줘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해 준 사람에게 외교의 중직 자리를 내주면서 섭섭치않게 보상해 주었다고 한다.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패션감각을 한껏 살려 왕비의 방을 꾸며주는 등, [[루이 15세]]의 왕비인 [[마리 레슈친스카]]를 극진히 대우해서 왕비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. 퐁파두르가 꾸며 준 자기 거처를 본 마리 레슈친스카가 "폐하께 정부가 꼭 있어야 한다면 퐁파두르가 좋겠다"고 말했다고. 당시에는 정부가 정실부인에게 극진히 예를 갖추고 받들어 모시는 것을 좋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고, 마리 레슈친스카가 역대 프랑스 왕비들 중에서도 유독 남편의 정부에 대해 관대했던[* 정확히는 남편이 하도 이 여자 저 여자 끼고 살다 보니 하나하나 잡자면 끝이 없어서 그냥 눈 감고 귀 막기를 택한 것도 없지 않겠지만....] 것도 있다. 퐁파두르 부인이 [[루이 15세]]에게 유부녀인 것을 밝혔을 때 그는 이미 부인에게 빠져버린 까닭에 남편인 데티올은 강제로 별거를 당했다. [[애처가]]였던 데티올은 아내를 바친 이후에 심한 배신감을 느껴 아내를 평생 용서하지 않고, 대신 오페라 여배우와 사실혼 관계로 살다가 퐁파두르 부인이 죽은 이후에 바로 재혼했다.[* 다만 뭔가 비뚤어진 성향이 있었던 모양인지, 요새로 치면 [[아동성범죄|어린 여자아이에게 외설적인 행위를 한 혐의]]로 피소되기도 했다.] 사랑하는 아내를 왕에게 뺏기는 수모를 당하긴 했지만 그 대신 요직을 얻어 큰 수익을 올렸고, 사실혼 관계였던 여배우 마리 에메 말타(Marie-Aimée Maltha)와 재혼해 (아내 사이에서는 두지 못했던) 여러 자녀를 낳아 다복한 가정을 꾸렸다. 퐁파두르 부인 사후엔 아예 정식으로 결혼하여 [[사생아]]들을 적자로 만들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